기원후 2세기 전반, 고대 로마 제국의 가장 막강하고 용맹했던 최정예 부대 한 곳이 북대서양의 거친 바람이 부는 브리타니아의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제9 히스파나 군단.
줄리어스 시저 시절부터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상처 입지 않는 무적의 군단이라 불리던 5,000명의 정예 보병 부대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스코틀랜드의 혹독한 북부 산악 지대로 진격한 직후, 이 거대한 군대는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단 하나의 공식 기록도 남기지 않은 채 지구상에서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습니다.
제국의 가장 자랑스러웠던 군단이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연기처럼 사라질 수 있었을까요?
영화와 소설의 수많은 모티브가 되었으며, 역대 역사학계와 고고학계의 가장 서늘하고 거대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로마 제9군단 실종 사건의 미스터리를 심층적으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제9 히스파나 군단의 영광
제9군단의 역사는 로마 제국의 영광 그 자체였습니다.
기원전 1세기,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창설된 이 군단은 갈리아 전쟁에서 명성을 떨쳤고, 폼페이우스와의 내전에서도 시저에게 승리를 배달한 핵심 주역이었습니다.
이후 기원후 43년,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브리타니아 침공을 감행했을 때, 제9군단은 침략 선봉장으로 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들은 브리타니아 원주민들의 격렬한 저항과 켈트족의 영웅 부디카 여왕의 대봉기 속에서도 살아남아,
오늘날 요크 시의 전신이 되는 강력한 요새 에보라쿰을 건설하고 북방 방어선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원후 120년경을 기점으로, 로마의 모든 공식 군대 명부와 역사서에서 제9군단의 이름이 단 한 줄의 설명도 없이 완전히
지워지게 됩니다.
진실을 추적하는 3가지 유력한 시나리오
5,000명의 중무장한 대군이 단체로 사라진 이유를 두고, 현대 역사학자들과 고고학 유적 조사단이 제시하는
3가지 유력한 가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설 A: 안개 속의 대참사, 스코틀랜드 전멸설
가장 오랫동안 대중과 사학계를 매료시킨 가설은 칼레도니아 원주민들과의 전쟁 중 전멸입니다.
당시 북부 스코틀랜드에는 로마인들이 ‘야만인’이라 부르며 두려워했던 사납고 용맹한 부족 픽트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기원후 117년경, 북방 방어선이 무너지고 픽트족의 대규모 공습이 시작되자 제9군단은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짙은 안개가 자욱한 북부 스코틀랜드의 험준한 산악 지대로 진격했습니다. 하지만 지형에 익숙하지 못했던 로마군은 픽트족이 파놓은 게릴라식 매복과 덫에 걸려들었습니다. 사방이 가로막힌 계곡 속에서 5,000명의 군단병들은 구조 요청조차 보내지 못한 채 처참하게 학살당했고,
로마 황실은 군단이 전멸했다는 치욕적인 사실을 숨기기 위해 기록을 고의로 말소했다는 주장입니다.
가설 B: 유대 제국으로의 전장 이동과 전멸설
최근 고고학적 발굴이 진행되면서 학계의 무게추가 급격히 이동한 가설입니다.
제9군단이 스코틀랜드에서 사라진 게 아니라, 제국의 다른 뜨거운 전장으로 비밀리에 재배치되었다가 그곳에서 멸망했다는
주장입니다.
기원후 132년, 유대 땅에서 로마 제국을 뒤흔든 거대한 유대인 봉기인 바르 코흐바의 난이 발발했습니다.
당시 유대인 저항군은 게릴라 전술로 로마 군대들을 차례로 격파하고 있었는데,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이 급박한 불을 끄기 위해
영국에 있던 제9군단을 중동 전선으로 비밀리에 급파했다는 설입니다. 실제로 네덜란드 등 유럽 본토에서 기원후 120년 이후의
것으로 추정되는 제9군단의 문양이 새겨진 기와와 타일 파편이 발견되면서, 이들이 영국을 떠나 이동 중이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즉, 이들은 스코틀랜드의 안개가 아니라, 유대 광야의 뜨거운 모래바람 속에서 저항군에게 전멸당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가설 C: 거란족 전선에서의 소멸설
또 다른 가설은 로마의 영원한 숙적이었던 동방의 강력한 제국 파르티아와의 전쟁에서 사라졌다는 주장입니다.
기원후 160년경, 파르티아 군대가 로마의 속주였던 아르메니아를 침공했을 때, 이를 막으러 갔던 한 로마 군단이 시리아 근처에서 포위되어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몰살당했다는 기록이 존재하는데, 이 비운의 군단이 바로 영국에서 동방으로 이동했던 제9군단이었다는 해석입니다.
사라진 군단이 남긴 거대한 흔적
제9군단의 실종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그들의 증발이 로마 제국 전체에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다는 사실은 역사적 유적을 통해 고스란히 증명됩니다.
기원후 122년,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이례적으로 영국의 거친 변방까지 직접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대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돌벽, 일명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건설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그동안 거침없이 영토를 확장하던 강력한 로마 제국이, 스코틀랜드 북부 서쪽으로의 진격을 전면 포기하고 이 선을 넘지 말라며
거대한 성벽을 쌓아 방어로 돌아선 것입니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제9군단의 미스터리한 전멸을 목격한 황제가 북방 야만인들의
무시무시한 전투력에 질려버려 제국의 경계선을 칼로 자르듯 그어버린 공포의 외교적 방어선이라고 해석합니다.
기록이 지워졌기에 영원이 된 군단
로마 제9군단은 스코틀랜드의 서늘한 안개 속에서 원주민들의 도끼에 쓰러졌을까요,
아니면 중동의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서 유대 저항군의 칼날 앞에 무릎을 꿇었을까요?
역설적이게도 제9군단은 전멸의 기록이 완벽하게 지워졌기 때문에, 인류 역사 속에서 영원한 생명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평범하게 승리하거나 패배해 역사서에 기록되었다면, 우리는 이 황금 독수리 깃발의 군단에게 이토록 열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인을 잃은 채 영국의 어느 깊은 흙더미 속에 묻혀 있을 제9군단의 상징, 황동 독수리 상은 오늘도 고대 제국이 남긴 가장 서늘하고 찬란한 미스터리를 품은 채 깊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