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미스터리한 바다, 태평양. 그 광활한 푸른 물결 한가운데에는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많은 전설이 숨쉬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전설은 단연 하루아침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는 대륙, 아틀란티스일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아틀란티스를 대서양이나 지중해의 신화 속 이야기로만 생각하지만, 실제로 태평양 한가운데에는 태평양의 아틀란티스라 불릴 만한 거대한 바다 위 인공 도시 유적이 실존합니다. 바로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폰페이섬 동쪽 해안에 위치한 난마돌 유적입니다.
얕은 산호초 바다 위에 총 90여 개가 넘는 인공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수십 톤짜리 거대 현무암 기둥을 촘촘히 쌓아 올린 이 해상 도시는 도대체 누가, 왜, 어떻게 건설한 것일까요?
현대 과학과 고고학조차 완벽히 풀지 못한 난마돌의 찬란한 역사와 바다 밑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베일을 벗은 해상 제국: 난마돌은 어떤 곳인가?
난마돌이라는 말은 폰페이 현지어로 사이가 뜨는 공간 혹은 천체 사이의 공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공 섬과 섬 사이에 촘촘하게 뻗어 있는 수로들의 모습이 마치 별과 별 사이의 우주 공간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실제로 이 유적은 섬 전체가 정교한 수로로 연결되어 있어 태평양의 베네치아라는 별명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난마돌은 단순히 몇 개의 건물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 아닙니다.
약 18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면적에 제례 공간, 왕의 거처, 귀족들의 주거지, 장례 행사를 위한 사당, 심지어 군사 요새와 방파제까지 완벽하게 갖추어진 고대 사우델레우르 왕조의 거대한 수도였습니다.
이 유적이 경이로운 이유는 건축 방식에 있습니다. 고대 폰페이인들은 맨땅 위에 건물을 지은 것이 아니라, 바다 밑 산호초 위에 거대한 현무암 바위들을 가져와 기초를 다진 후, 그 위에 통나무 모양의 천연 현무암 기둥들을 우물 정 자 모양으로 엇갈려 쌓아 올렸습니다.
유적 전체에 사용된 현무암의 총 무게는 대략 75만 톤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 들어간 석재의 양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입니다.
돌의 불가사리: 고대 폰페이인들은 어떻게 거석을 옮겼을까?
난마돌 유적을 마주한 현대 고고학자들이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이 거대한 돌들을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가져왔는가?였습니다.
난마돌을 이루고 있는 돌들은 가벼운 산호석이 아닙니다. 화산 활동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육각이나 오각 기둥 형태로 굳어진 아주 무겁고 단단한 주상절리 현무암입니다. 기둥 하나의 무게만 해도 최소 5톤에서 무거은 것은 50톤에 육박합니다.
조사 결과, 난마돌 유적이 위치한 동쪽 해안가에는 이러한 주상절리 현무암 광산이 없습니다.
이 돌들을 구하려면 섬 반대편에 있는 북서쪽 산악 지대나 화산 지대에서 돌을 떼어내야 했습니다.
바퀴도 없었고, 철기나 청동기 같은 금속 도구도 없었으며, 말이나 소 같은 대형 가축도 없었던 고대 미크로네시아인들이 수십 톤짜리 돌기둥 수만 개를 섬 반대편에서 바다를 건너 이곳까지 옮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 때문에 폰페이 섬에는 다음과 같은 기묘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먼 옛날, 서쪽에서 강력한 마법을 부리는 올로시파와 올로소파라는 쌍둥이 주술사 형제가 찾아왔다. 그들은 신의 도움을 받아 하늘을 나는 용의 숨결을 빌려 거대한 돌기둥들을 공중에 띄웠고, 돌들은 스스로 바다를 날아와 지금의 난마돌 자리에 차곡차곡 쌓였다.
물론 과학계는 이를 전설로 치부하고, 고대인들이 뗏목을 이용해 바닷길로 돌을 운반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현대 연구진들이 당시 기술을 재현해 5톤짜리 현무암 기둥을 뗏목에 싣고 바다로 나가는 실험을 했을 때, 뗏목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아주 정교하고 거대한 특수 뗏목과 수백 명의 숙련된 노잡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토목 공사였던 것입니다.
이들이 어떤 구체적인 공법으로 이 해상 도시를 완벽하게 대칭형으로 완공했는지는 여전히 인류학계의 거대한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사우델레우르 왕조의 영광과 잔혹한 통치
고고학적 연대 측정에 따르면, 난마돌은 기원후 500년경부터 기초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기원후 1100년부터 1600년까지 사우델레우르라 불리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왕조에 의해 지금의 거대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사우델레우르 왕조는 폰페이섬 전체를 하나로 통일한 최초의 지배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난마돌이라는 격리된 해상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왕조는 섬 전역의 부족장과 귀족들을 난마돌 내부의 지정된 인공 섬에 강제로 이주시켜
살게 했습니다.
이는 조선 시대의 인질 제도나 프랑스 루이 14세가 귀족들을 감시하기 위해 베르사유 궁전에 모여 살게 한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고도의 정치적 전략이었습니다. 바다로 둘러싸인 난마돌 내부에서는 왕의 군사들이 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완벽하게 감시할 수 있었고, 반란의 싹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난마돌은 철저한 제례의 중심지였습니다. 특히 이데드라고 불리는 인공 섬에는 거대한 사당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사제들은
바다에 사는 거대한 뱀이나 바다장어를 신의 대리자로 모시며 거룩한 의식을 치렀습니다.
백성들이 바친 첫 수확물과 거북이 고기를 이 신성한 장어에게 먹여 장어가 이를 받아먹으면 신이 노여움을 풀었다고 믿었습니다. 왕조는 이러한 종교적 공포 정치를 통해 백성들의 노동력을 쥐어짜 냈고, 그 피와 땀 위에서 난마돌은 날로 거대해졌습니다.
왜 그들은 도시를 버렸는가? 문명의 갑작스러운 종말
수백 년간 견고하게 유지되던 사우델레우르 왕조의 압제는 17세기 초, 외부에서 침공한 영웅 이소켈레켈에 의해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소켈레켈은 333명의 전사를 이끌고 난마돌을 기습 공격하여 잔혹한 사우델레우르의 마지막 왕을 폐위시키고 폰페이섬의
새로운 지배 체제를 확립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이소켈레켈과 그의 후손들은 당연히 이 웅장하고 거대한 해상 도시 난마돌을 자신들의 거처이자 궁궐로 삼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미스터리가 발생합니다.
새로운 지배자들은 난마돌에 승리의 깃발을 꽂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 전체를 완전히 비우고 육지로 철수해 버렸습니다.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인간의 손길로 다듬어진 대제국의 수도가 하룻밤 사이에 유령 도시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난마돌을 버린 과학적인 원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가설들이 제시됩니다.
가설 1: 식수와 식량 공급의 치명적 한계
난마돌은 바다 위에 지어진 도시이기 때문에 내부에 자체적인 우물이나 농경지가 없었습니다.
수천 명에 달하는 왕족과 귀족, 군인들이 먹을 신선한 민물과 식량은 매일 육지의 백성들이 배로 날라다 주어야만 유지되는
지극히 기형적인 구조였습니다.
왕조가 무너지고 강력한 강제 동원 체제가 느슨해지자, 육지에서 매일 물과 음식을 나르는 보급선이 끊겼을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고립된 해상 도시는 생존을 위해 버려질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입니다.
가설 2: 치명적인 전염병의 창궐
밀폐된 해상 수로 환경에서 급격한 전염병이 돌았을 가능성입니다.
좁은 인공 섬에 모여 살던 지배 계급이 전염병으로 몰살당하거나, 전염병을 신의 저주로 받아들인 생존자들이 공포에 질려 도시를 탈출했다는 설입니다.
태평양판 아틀란티스: 바다 밑에 잠긴 진짜 비밀
오늘날 관광객들이 보는 난마돌은 수면 위에 드러난 유적에 불과합니다.
진짜 미스터리는 난마돌 유적 아래의 깊은 바닷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현대 해양 고고학자들이 잠수 장비를 갖추고 난마돌 주변의 깊은 바닷속을 조사했을 때, 전 세계는 다시 한번 경악했습니다.
현재의 수면 아래 수십 미터 깊이의 깊은 바다 밑바닥에서도, 지상 유적과 똑같은 형태의 거대 현무암 기둥들과 돌기둥으로 만든 인공 구조물, 그리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기둥 모양의 거석 무덤들이 끝없이 발견된 것입니다.
폰페이 섬의 원주민들은 예로부터 바다 밑에 잠겨 있는 이 수중 도시를 카님웨이소, 즉 신들의 지하 도시라고 부르며 접근을 엄격히 금기시해 왔습니다.
이 수중 유적의 존재는 난마돌이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건설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인류 역사상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해수면이 급격히 상승했던 기원전 수천 년 전, 혹은 그 이전에 이미 이곳에 고도의 석조 건축 기술을 가진 초고대 문명이 존재했다는 가설입니다.
그 문명이 기후 변화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고, 수천 년 후 이 섬에 정착한 사우델레우르 왕조가 바다 위에
남아 있던 유적의 윗부분을 토대로 그 위에 새로운 돌을 쌓아 올린 것이 지금의 난마돌일지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신비의 섬이 인류에게 남긴 메시지
2016년, 유네스코는 난마돌의 독창성과 가치를 인정해 세계문화유산 및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동시에 지정했습니다.
우주의 천체를 닮은 수로, 용의 마법으로 지었다는 거석 전설, 그리고 깊은 바다 밑에 잠겨 있는 정체불명의 수중 도시까지.
난마돌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고대 유적보다 서늘하고 압도적인 신비감을 뿜어냅니다.
철기조차 없던 고대 태평양의 섬 주민들이 이룩한 이 위대한 해상 오디세이는, 인류의 능력이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했을지도 모른다는 경외감을 심어줍니다. 지금도 태평양의 푸른 파도는 바다 밑에 잠긴 난마돌의 진짜 비밀을 품은 채, 말없이 넘실거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