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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년 만의 귀환, 막걸리와 샴페인으로 나눈 한·불 최초의 우정 이야기

by Jirongee 2026. 6. 3.

175년이라는 긴 세월을 돌고 돌아 마침내 고향 땅을 밟은 특별한 유물이 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공식적인 첫 만남과 따뜻한 정을 상징하는 ‘옹기주병’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이번에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아 그동안 프랑스에 보관되어 있던 양국의 외교 보물들이 대거 국내에서 공개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프랑스 박물관의 ‘한국 유물 1호’인 옹기주병에 얽힌 감동적인 스토리부터, 이번 특별전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관람 포인트까지 자세히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175년 만의 귀환, 막걸리와 샴페인으로 나눈 한·불 최초의 우정 이야기
175년 만의 귀환, 막걸리와 샴페인으로 나눈 한·불 최초의 우정 이야기

 

1851년 비금도, 샴페인과 막걸리의 역사적 만남

우리가 흔히 역사 교과서에서 배우는 프랑스와의 첫 만남은 1866년의 '병인양요' 같은 무력 충돌일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15년이나 앞선 1851년, 조선과 프랑스 사이에는 아주 따뜻하고 평화로운 만남이 있었습니다.

사건의 시작은 신안군 비금도 앞바다였습니다. 프랑스의 고래잡이배인 '나르발호'가 난파되어 선원들이 조선 땅에 표류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낯선 이방인들의 등장에 당황할 법도 했지만, 이정현 나주목사를 비롯한 조선의 관리들과 주민들은 굶주리고 지친 프랑스 선원들을 극진히 보살펴 주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선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상하이 주재 프랑스 영사였던 샤를 드 몽티니(Charles de Montigny)가 조선을 찾았습니다. 몽티니 영사는 자국 선원들을 안전하게 구해준 조선 측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특별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프랑스의 '샴페인'과 조선의 '막걸리'가 교환되며 양국 간의 첫 번째 기념 만찬이 열리게 됩니다.

 

세브르 국립도자기박물관 ‘한국 유물 1호’가 되다

만찬이 끝난 후, 프랑스 측의 호의에 대한 답례로 조선이 건넨 선물이 바로 '옹기주병' 3병이었습니다.

소박하지만 조선 서민들의 삶과 멋이 그대로 담긴 이 옹기 술병은 몽티니 영사의 손을 거쳐 프랑스로 건너갔습니다.

이후 프랑스의 명망 높은 '세브르 국립도자기박물관'에 기증되었으며, 이는 해당 박물관이 소장한 최초의 한국 유물(한국 유물 1호)이라는 기념비적인 타이틀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1851년 타국으로 떠났던 이 술병이 무려 175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아 우리 눈앞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한·불 수교 140주년 특별전, 놓치면 안 될 핵심 관람 포인트

국가유산청은 이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여 국립고궁박물관과 덕수궁 돈덕전에서 특별전 ‘선물과 기록, 한국-프랑스 우정의 140년’을 개최합니다. 전시회에서 꼭 눈여겨봐야 할 핵심 유물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① 역사적 순간의 증거, '조불수호통상조약 문서' 원본 최초 동시 공개
1886년 정식으로 맺어진 '조불수호통상조약'의 역사적 문서 원본을 직접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프랑스 외교사료관이 소장 중인 문서 원본과 우리나라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 중인 문서 원본이 한자리에 모여 전 세계에 최초로 동시 공개됩니다. 양국의 필체와 도장이 선명히 찍힌 문서를 통해 140년 전 외교의 현장을 생생하게 느껴보세요.

 

② 프랑스 대통령의 선물, '백자 채색 살라미나 병'
과거 조선 왕실과 프랑스 공화국은 선물을 통해 두터운 신뢰를 쌓았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마리 프랑수아 사디 카르노 대통령이 고종 황제에게 증정한 ‘백자 채색 살라미나 병’도 전시됩니다. 프랑스 세브르 도자기 특유의 화려한 색감과 정교한 문양이 돋보이는 명작으로, 당시 조선 황실이 서양 세계와 어떻게 교류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증거입니다.

 

③ 조선 왕실의 예술적 품격, '반화(盤花)'
고종 황제가 카르노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냈던 외교 선물인 ‘반화’(복제품)도 함께 베일을 벗습니다. 반화는 금속이나 보석 등으로 정교하게 만든 인조 꽃을 화분에 심은 형태의 조선 왕실 공예품입니다.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처럼 양국의 우정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고종 황제의 마음이 담긴 예술품으로, 조선 왕실 공예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전시 정보 요약

  • 전시 명칭: 한·불 수교 140주년 기념 특별전 ‘선물과 기록, 한국-프랑스 우정의 140년’
  • 전시 장소: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및 덕수궁 돈덕전
  • 개막일: 2026년 6월 3일 (수) 정식 개막
  • 주요 전시 유물: 175년 만에 귀국한 '옹기주병', 조불수호통상조약 문서 원본(한국·프랑스 소장본 동시 공개), 백자 채색 살라미나 병, 왕실 외교 선물 '반화' 등

덕수궁 돈덕전과 국립고궁박물관은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있으므로, 하루 일정을 잡아 고궁 산책과 함께 두 곳의 전시를 모두 둘러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특히 덕수궁 돈덕전은 대한제국기 외교의 중심 공간이었던 만큼, 전시의 의미를 더욱 깊게 음미할 수 있습니다.

 

칼과 총 대신 '정'으로 시작된 외교의 가치

침략과 전쟁으로 얼룩지기 쉬웠던 근대사 속에서, 난파된 이방인 선원들을 따뜻하게 대접하고 이에 감동해 샴페인을 터뜨리며 감사를 표했던 한국과 프랑스의 첫 만남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단순히 오래된 도자기나 종이 문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환대’와 ‘감사’가 만들어낸 140년 우정의 타임캡슐을 열어보는 듯한 전시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가족, 연인과 함께 175년 만에 고향 나들이를 온 옹기주병을 만나러 고궁으로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